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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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은 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 소속 여객기가 소련 영공을 침범하여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긴장 속에서 발생했으며, 269명의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사고기는 미국 뉴욕을 출발하여 서울로 향하던 중 항로를 이탈하여 캄차카 반도와 사할린 상공을 지나면서 소련의 요격을 받았다. 사건 직후 소련은 처음에는 격추 사실을 부인했으나, 국제 사회의 비난이 거세지자 격추를 인정했다. 이후 사고 원인과 관련된 여러 의혹이 제기되었으며, 특히 미국 군부의 지시, 스파이 임무 수행, 연료 절약 등의 음모론이 등장했다. ICAO의 조사 결과, 항로 이탈은 자동 조종 장치 오류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여전히 많은 의문점이 남아있다. 이 사건은 냉전 시기 미·소 관계를 더욱 악화시켰으며, 민간 항공기 격추를 금지하는 국제법 개정의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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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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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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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983년 9월 1일 |
유형 | 항법 오류로 인한 소련 방공군의 격추, 이로 인해 공중 분해 발생 |
위치 | 동해, 모네론섬 근처, 사할린섬 서쪽,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소련 |
출발지 |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뉴욕, 미국 |
경유지 | 앵커리지 국제공항, 앵커리지, 알래스카, 미국 |
목적지 | 김포국제공항, 서울 강서구, 대한민국 |
승객 | 246 |
승무원 | 23 |
탑승자 | 269 |
사망자 | 269 |
항공기 종류 | 보잉 747-230B |
운영사 | 대한항공 |
꼬리 번호 | HL7442 |
ICAO | KAL007 |
IATA | KE007 |
호출 부호 | KOREAN AIR 007 |
원인 | |
원인 | 이륙 후 관성항법장치의 작동 대신 나침비행방위기의 지속적인 작동으로 인한 대한항공의 보잉 747기의 소련 영공 침범 |
관련 사건 | |
관련 사건 | 1978년의 대한항공기 총격 사건과 1987년의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
2. 배경
사건 발생 5년 전인 1978년에 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이 발생하면서, 소련 영공 침범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냉전 상태였으며, 특히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소련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181]
1983년 8월 31일, 대한항공 007편(KAL 007편)은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알래스카 앵커리지를 경유, 서울 김포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사고기는 보잉 747-230B 기종(등록번호 HL7442)으로, 루프트한자의 자회사였던 콘도르 항공에서 사용하다가 1979년 대한항공이 중고로 도입한 것이었다. 이 항공기는 4개의 프랫 & 휘트니 JT9D-7A 엔진으로 구동되었으며,[8] 사고 당시 3대의 관성항법장치 중 한 대에 이상이 있었다.
사고기는 원래 루프트한자 계열의 항공사였던 콘도르 항공에서 운용하다가, 1979년 대한항공이 중고로 도입한 B747-200 기종이었다. 이륙 당시 이미 3대의 관성항법장치 중 한 대에 이상이 있는 상태였다.
한미상호방위조약 30주년 기념식에 참석 예정이었던 미국 공화당 제시 헬름스와 스티브 심즈 상원의원, 민주당 캐롤 J. 허바드 하원의원은 KAL 015편을 타고 가던 중, 테드 스티븐스 앵커리지 국제공항에서 007편을 타려던 노엘과 스테이시 그렌펠 자매와 만났다. 헬름스 의원은 그들에게 수화로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회상했다.[184] (이들은 007편에 탑승하지 않았다.)
3. 경과와 격추
앵커리지에서 연료를 보급하고 승무원을 교체한 후, 007편은 예정보다 30분 늦게 출발했다. 이륙 직후, 007편은 지정된 항로(J501)를 벗어나 북쪽으로 이탈하기 시작했다. 국제 민간 항공 기구(ICAO)의 시뮬레이션 및 비행 기록 장치 분석에 따르면, 자동 조종 장치가 INS 모드로 전환되어야 할 지점을 지난 후에도 HEADING 모드로 작동했기 때문에 항로를 이탈했을 가능성이 높다.[38][25]
007편은 캄차카반도를 지나 사할린 상공의 소련 영공에 진입했고, 소련 방공군은 이를 군사 표적으로 간주하여 요격에 나섰다. 당시 미국과 소련 간의 긴장은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최고조에 달했고, 소련은 미국의 군사 활동에 대해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돌린스크-소콜 공군 기지에서 출격한 Su-15 전투기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 중령은 007편에 접근하여 경고 사격을 했으나, 007편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시포비치 중령은 1996년 뉴욕 타임즈 인터뷰에서 자신이 민간 여객기임을 알고 있었다고 인정했다.[187]
결국, 오시포비치 중령은 K-8 (NATO 보고 이름: AA-3 "Anab") 공대공 미사일 두 발을 발사하여 007편을 격추했다.[44] 공격 당시 007편은 35,000피트 고도에서 비행 중이었으며, 미사일 피격 후 급격히 상승했다가 하강하기 시작했다.[185][186] 조종실 음성 기록 장치(CVR)에는 피격 직후 조종사들의 대화와 비상 상황을 알리는 기내 방송이 녹음되었으나, 피격 후 1분 44초 만에 기록이 중단되었다.
007편은 모네론섬 부근 해상에 추락했고, 탑승객 269명 전원이 사망했다.
3. 1. 비행기를 탄 사람들의 국적
국적 | 승객 | 승무원 | 합계 |
---|---|---|---|
대한민국 | 76 | 29 | 105 |
도미니카 공화국 | 1 | 0 | 1 |
미국 | 62 | 0 | 62 |
스웨덴 | 1 | 0 | 1 |
영국 | 2 | 0 | 2 |
오스트레일리아 | 2 | 0 | 2 |
이란 | 1 | 0 | 1 |
인도 | 1 | 0 | 1 |
일본 | 28 | 0 | 28 |
중화민국 | 23 | 0 | 23 |
캐나다 | 8 | 0 | 8 |
태국 | 5 | 0 | 5 |
필리핀 | 16 | 0 | 16 |
영국령 홍콩 | 12 | 0 | 12 |
합계 | 240 | 29 | 269 |
승무원 29명 중 6명은 업무상 이동을 위해 편승 중인 데드헤드(deadheading) 승무원들이었다.
일본인 승객이 다소 많은 것은 당시 일본항공[189]에 비해 운임이 저렴했기에 이 항로를 타고 김포국제공항을 경유하여 일본으로 가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4. 격추 후
대한민국과 서방 국가들은 소련 전투기의 비무장 여객기 공격에 큰 충격을 받았다. 대한민국에서는 9월 2일부터 3일간 특별 애도 기간을 갖고 조기를 게양했으며, 정부는 유엔 안보리 소집을 요청하여 소련을 강력히 항의했다.[190] 각국은 소련 국적 항공기의 운항 중지 및 모스크바 취항 거부 등의 제재를 가했다.
9월 5일, 유가족 53명을 태운 페리가 사건 현장을 방문했으나 시신은 한 구도 찾지 못했다. 이 사건은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과 함께 양대 KAL기 사건으로 회자된다.
당시 KAL 007편을 격추한 수호이 15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는 관제소로부터 유도 착륙 명령을 받았으나, KAL 007편이 비행을 계속하자 경고 사격 후 격추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1996년 뉴욕 타임즈 인터뷰에서 민간 여객기임을 알고 있었지만, 군사용으로 바꾸기 쉽기 때문에 의미가 없었다고 밝혔다.[188]
공격 직후, 비행기는 35,000피트 고도에서 비행 중이었고, 충격으로 기수가 올라 38,250피트까지 상승했다. 천 기장은 자동 조종 장치를 끄고 수동 조종하여 원래 고도로 돌아왔으나, 1분 30초 만에 점진적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185][186]
사고 후 소련은 민간 여객기임을 몰랐으며, 미국의 고의적인 도발로 오해했다고 발표했다.[190] 그러나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비난하며 강경 대응했다.
2005년, 러시아 알렉산드르 콜레스니코프 교수는 KAL기가 나토 첩보 정찰기였다고 주장했으나, 대한항공과 한국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191][192][193]
사고 당시 인근 상공에서는 미국, 소련, 일본 간의 정보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194] 1991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당시 통신 내용이 담긴 블랙박스를 전달했으나, 사건의 진상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4. 1. 사고 해석
사고 원인에 대한 여러 가설이 제시되었지만, KAL 007편의 항로 이탈 원인은 여전히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주요 가설:
- 관성 항법 장치 (INS) 입력 오류 설: 조종사가 항로 상의 통과 지점을 INS에 잘못 입력했거나, 출발지 좌표를 잘못 입력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180]
- INS 기동 오류 설: INS 작동 전 자이로 안정화 과정에서 스위치 전환을 잘못했거나, 기체를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다.[180]
- INS 전환 오류 설: 항로 진입 후 자동 조종 모드를 NAV 모드(사전 입력 지점 비행)로 전환해야 하는데, 난기류나 적란운 회피를 위해 HDG 모드(방위만 지정)를 유지했거나, NAV 모드로 전환했지만 항로에서 7.5마일 이상 벗어나 기계가 전환되지 않았을 수 있다.[180]
- 조종사 과실: 조종사들이 피로, 시차 부적응 등으로 인해 주의력이 저하되어 설정 실수나 전환 오류를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고 당시 조종사들의 음성 기록 장치에는 하품이 반복적으로 녹음되어 있었다.[180]
소련 측 격추 관련 의문점:
- 민간 항공기 인지 여부: 소련 붕괴 후, 격추 전투기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 중령은 KAL 007편이 항행등을 켜고 있었고, 자신과 지상 모두 '민간기를 가장한 스파이 기'로 인식했다고 증언했다. 미군 도청 결과, 격추 2시간 후 "민간기를 격추한 것 같다"는 보고가 있었다.[43]
- 소련 방공 시스템: 빅토르 벨렌코 전 소련 방공군 중위는 "영공을 침범하면 민간기라도 격추하는 것이 소련의 방식"이며, 요격기는 격추를 목표로 발진한다고 증언했다. 지상 방공 지령 센터는 민간기 여부를 알 수 없는 채 요격 실패 책임을 우려해 미사일 발사를 지시했다는 것이다.[43]
기타 가설:
- 미국 정부 또는 군부의 사주: KAL 007편이 미국 정부 또는 군부의 지시로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는 음모론이 제기되었으나, 많은 승객이 탑승한 정기 여객기로 영공 침범을 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재 러시아 정부도 이 가설을 부정하고 있다.[38]
- 연료 절약설: 기장이 연료 절약을 위해 의도적으로 항로를 변경하여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는 설도 있지만, 대한항공이 과거 소련 영공 침범으로 큰 손해를 입었던 점, 연료 절약을 위해 영공 침범을 지시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낮다.
이처럼 다양한 가설과 의문점이 제기되었지만, KAL 007편 격추 사건의 진실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5. 논란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은 비무장 여객기가 전투기에 의해 요격된, 유사 사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 상황에서 발생하여 여러 음모 이론을 낳았다.
KAL 007편이 스파이 임무를 수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196][197] 2005년 8월 31일, 러시아 전쟁역사학자 알렉산드르 콜레스니코프 교수는 러시아 일간지 모스콥스키콤소몰레츠에 기고한 KAL기 참사 22주년 특별 기고문에서, 사고 관련자들의 인터뷰 기록 등을 토대로 KAL기가 나토 첩보 정찰기였다고 주장했다. 당시 극동군 사령관인 이반 트레치야크가 KAL기가 영공에 들어온 직후부터 나토 특수부와 주고받은 교신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또한, 진짜 블랙박스는 아직도 러시아에 있다고 주장했다.[191] 그러나 타임지는 이러한 음모론을 보도했다가 대한항공에 고소를 당해 배상하고 사과문을 게재해야 했다.[198] 대한민국과 한국 정부는 개인의 주장일 뿐이라며 무시했다.[192][193]
1994년 로버트 W. 알라다이스와 제임스 고린은 《Desired Track: The Tragic Flight of KAL Flight 007》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스파이 임무 설을 지지하였다.[199] 2007년에 그들은 잡지 에어웨이에 국제민간항공기구의 조사에 이의를 제기하는 글을 다시 실었다.[200]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사고 당시 인근 상공에서는 미국, 소련, 일본의 치열한 정보 전쟁이 진행 중이었다.[194] 소련 붕괴 후 1991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당시 통신 내용이 담긴 블랙박스를 전달했으나, 사건의 진상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6. 사건의 영향
7. 수색 및 구조
1983년, 냉전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미국, 한국, 일본은 소련과의 협력 없이 대한항공 007편의 수색 및 구조 작전을 진행해야 했다.[34] 소련은 자국 영해 내에서의 수색을 허용하지 않았고, 공해상에서의 수색 작업도 방해했다.[34]
사건 직후, 미국, 일본, 소련은 사할린 섬 서쪽 해역에서 수색 작업을 벌였으나, 소련은 자국 영해 내 수색을 불허하고 공해상에서의 수색도 방해했다. 주요 잔해는 발견되지 않았고, 추락 지점은 모네론 섬 인근 국제 수역으로 추정된다.
소련은 해수면에서 시신을 찾지 못했다고 주장했지만, 이후 사할린에서 미국-일본 공동 대표단에게 옷과 신발 등을 넘겨주었다. 격추 8일 후, 일본 홋카이도 북쪽 해안에서 유해와 기타 물품들이 발견되었다.
소련 붕괴 후, 이즈베스티야 신문의 취재 결과, 소련이 다수의 유해와 유품을 회수했지만, 일본에 인도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각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홋카이도에 표착한 유류품은 2003년 유족회의 동의를 얻어 소각 처리되었다.
각국이 찾던 블랙 박스는 사건 직후 소련이 회수하여 분석을 마쳤지만, "스파이 비행 설"을 반증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 사실을 공표하지 않았다.
8. 진상 규명 노력
사고 당시 인근 상공에서는 미국, 소련, 일본 간의 치열한 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194] 소련 붕괴 이후 1991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당시 통신 내용이 담긴 블랙박스를 전달했으나, 사건의 진상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1983년,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 간의 긴장은 여러 요인으로 인해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최고조에 달했다. 여기에는 미국의 전략 방위 구상, 유럽에 퍼싱 II 무기 시스템 배치 계획, 그리고 북태평양에서 열린 최대 규모의 해군 훈련인 FleetEx '83-1 등이 포함되었다.[34] 소련 군사 계층은 이러한 조치를 호전적이고 불안정하게 여겼다. 그들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의도를 깊이 의심했고, 레이건이 소련에 대한 선제 핵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두려워했다. 이러한 두려움은 RYAN으로 절정에 달했다.[97]
미드웨이와 엔터프라이즈의 항공기는 FleetEx '83 해군 훈련(1983년 3월 29일~4월 17일) 동안 쿠릴 열도의 소련 군사 시설을 반복적으로 비행했다.[35] 그 결과, 이를 격추하지 못한 소련 군사 관계자들이 해임되거나 견책을 받았다.[36] 소련 측에서는 RYAN이 확대되었다.[36]
소련 자료에 따르면[30], 협정 세계시(UTC) 15시 51분에 KAL 007편은 캄차카 반도의 비행 제한 구역에 진입했다. 완충 구역은 캄차카 해안에서 까지 뻗어 있으며 비행 정보 구역(FIR)으로 알려져 있다. KAL 007편이 캄차카 해안에서 약 떨어진 지점에서 네 대의 MiG-23 전투기가 보잉 747기를 요격하기 위해 출격했다.[38]
1989년 서방으로 망명한 소련 공군 대위 알렉산드르 주예프에 따르면, 10일 전에 북극 강풍으로 인해 캄차카 반도의 주요 경고 레이더가 고장나면서 추격이 더 어려워졌다. 또한, 그는 레이더 수리를 담당하는 지역 관리들이 모스크바에 거짓 보고를 하여 레이더를 성공적으로 수리했다고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이 레이더가 정상 작동했다면, 민간 항공기로 적절하게 식별할 시간이 충분했기에, 길 잃은 여객기를 약 2시간 전에 요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신, 신원 미상의 제트기는 캄차카 반도를 넘어 오호츠크 해 상공의 국제 공역으로 진입했으나 요격되지 않았다.[39] 주예프는 ''60 Minutes''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사람들은 엉덩이를 구하려고 모스크바에 거짓말을 했다"고 말했다.[40]
소련 극동 지역 방공군 사령관인 발레리 카멘스키[41] 장군은 중립 수역에서조차 KAL 007편을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긍정적인 식별을 통해 여객기가 아닌 것이 확인된 경우에 한해서였다. 그의 부하인 소콜 공군 기지 사령관이자 나중에 러시아 공군 사령관이 된 아나톨리 코르누코프 장군은 침입 항공기가 이미 캄차카 반도를 지나갔기 때문에 긍정적인 식별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소련 영공에 진입했다가 나갔다 하는 대한민국 항공기를 1시간 이상 추적해 온 소련 방공군 부대는 사할린 상공에서 다시 영공에 진입했을 때 해당 항공기를 군사 표적으로 분류했다.[38] 오랜 지상 통제 요격 후, 세 대의 Su-15 전투기 (근처 돌린스크-소콜 공군 기지에서)와 MiG-23[42] (스미르니흐 공군 기지에서)가 보잉기와 시각적인 접촉을 하는 데 성공했지만, 밤이었기 때문에 러시아 통신에서 밝혀진 대로, 항공기에 대한 중요한 식별을 하지 못했다. 선두 Su-15 전투기 조종사는 기관총으로 경고 사격을 했지만, 1991년에 회상하기를 "4차례, 200발 이상을 발사했습니다. 그래봐야 아무 소용 없었죠. 결국 저는 소이탄이 아닌 철갑탄을 장착했으니까요. 아무도 볼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43]
이 시점에서 KAL 007편은 도쿄 관제 센터에 연락하여 연료 절약을 위해 더 높은 비행 고도로 상승할 수 있도록 승인을 요청했다. 이 요청은 승인되었고, 보잉기는 고도를 바꾸면서 점차적으로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속도 감소는 추격하던 전투기가 보잉기를 지나치게 만들었고, 소련 조종사는 이를 회피 기동으로 해석했다. KAL 007편이 두 번째로 소련 영공을 벗어나려 할 때 격추 명령이 내려졌다.
소련 정부의 블랙박스 은닉 등으로 인해 사건에 대한 많은 의문점이 냉전이 종결된 1990년대까지 해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후 냉전이 종결됨에 따라 1991년 11월에 파리에서 열린 국제 테러 대책 회의에서 올레그 칼루긴소련 국가 보안 위원회(KGB) 의장 고문이 "이 사건의 상세한 내용을 일본 측에 보고하겠다"고 사사 아츠유키(전 초대 내각 안전 보장실 실장)에게 표명했다.
이후 실제로 러시아 정부는 회수를 은닉했던 007편의 블랙 박스를 ICAO에 제출하고, 아울러 남겨진 유품을 유족들에게 인도했다. ICAO는 이를 높은 분석 기술을 가진 제3국인 프랑스의 항공 당국에 제출하여 분석을 의뢰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조사의 최종 보고서를 정리했다.
그것에 따르면, 항로 이탈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어떤 가설이 옳은지는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 생존해 있지 않아 불명이다.
thumb
- 관성 항법 장치 입력 오류 설: 항로는 통과 지점을 순서대로 관성 항법 장치 (INS)에 입력하여 설정하지만, 경도만 (또는 위도만) 엇갈리게 입력되었거나, 출발지의 좌표가 잘못 입력되었을 것이라는 설.
- 관성 항법 장치 기동 오류 설: 관성 항법 장치는 비행 전에 자이로를 안정시키는 동작 (정렬)이 필요하다. 이 동작에서 실제 항법을 시작하기 전에 스위치를 전환해야 하지만, 전환 전에 기체를 움직였을 것이라는 설.
- 관성 항법 장치 전환 오류 설: 항로에 진입할 때까지 HDG 모드 (방위만 지정하는 자동 조종, 방위각 모드)로 비행하고, 항로에 진입한 후에는 NAV 모드 (사전에 입력한 지점을 향해 비행하는 자동 조종, 유도 모드)로 전환해야 하는데, 난기류 혹은 적란운 회피를 위해 HDG 모드를 유지한 채 NAV 모드로 전환하지 않았거나, HDG 모드로 전환했지만 소정의 항로에서 7.5마일 이상 벗어났기 때문에 기계가 전환되지 않았다는 설. 실제로 전환 누락으로 일본 항공기가 항로를 이탈한 사례가 있다.
007편의 음성 녹음 장치에는 기장과 부조종사, 항공 기관사가 하품을 반복하는 것이 기록되어 있어, 설정 실수 또는 전환 오류를 알아차리지 못한 원인으로 피로에 의한 인적 오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로 세 명의 운항 승무원은 사고 전에 서울→앵커리지→뉴욕→토론토→앵커리지라는 근무 스케줄이었고, 휴식도 취했지만 저널리스트 코야마 이와오가 저서에서 "시차에 피로를 느껴 휴식을 취하는 것은 단순히 잠을 자면 된다는 단순한 시간 맞추기로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언급하며, 승무원들은 시차 부적응이 덜 풀린 결과, 주의력이 산만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ICAO의 최종 보고서는 일본의 유족에게 원본의 사본만 전달되었고, 일본 정부는 "ICAO에 의한 조사의 중립성, 일관성을 잃을 우려가 있다"며 공식 일본어 번역은 작성하지 않았다.[180] 음성 녹음 장치의 음성은 코야마 이와오가 ICAO 본부에 가서 듣고 저서 『음성 녹음 장치 격추의 증언』에 일본어 번역을 수록했다.
9. 같이 보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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